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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나님 탓하기 (Blaming God)

Translated by: Hyung Ho Kim____ Written by: Ian & Karen


자신들의 잘못에 책임지는 사람이 드문데 이는 무슨 일이 잘 못되면 책임질 사람을 찾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 나뿐 것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기가 쉬운 것이 하나님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나타나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거나 심지어 변명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분이 하시는 방법이나 그 이유를 알지 않고는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주 안에서 최고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지만 이 세상에는 악도 존재합니다. 우주의 한 가운데서 악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뿐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은 단순이 당신과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뿐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받고 있는 사람을 시험하시거나 죄 지은 자를 벌하여 다시는 죄를 짖지 않게 하시거나 우리를 위한 그분의 완벽한 계획의 일부로 악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때문에 하나님을 탓하는 것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십대였을 때 우리 부모들은 우리를 파티나 춤추는 데나 음악회 혹은 방과 후 사회활동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재미를 보지 못하도록 허락하지 아니했던 부모들을 우리는 원망했었을 것입니다. 예, 부모들이 원망 받을만하지요.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충분이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주 전쟁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만 전쟁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전쟁은 영토나, 자원이나 정치, 종교적 몰 이해, 질시, 증오와 탐욕 때문에 일어 나는 것이니까요. 전쟁은 실제적 전쟁만 전쟁이 아니고 전쟁의 위협 또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물들에게 충분한 땅을 창조하셨기에 싸울 이유가 없지만 역사는 남의 땅을 차지하려는 것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가득합니다. 유럽인들의 세계적 정착과 기타 국가들의 팽창주의가 근본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의 땅이 동이 났던가요? 아닙니다. 그들은 다만 남의 땅을 원했을 뿐이었고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자 그들은 본토인들을 강제로 노예로 삼거나 반 노예 상태로 몰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형제 자매로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서로 나누어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이거나 전쟁의 위협이건 이 모두가 자원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데 현대에 와서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이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어떤 자원은 귀중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더욱 복잡한 것은 그와 같은 자원은 흔히 남의 땅에 있거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금강석이 좋은 예가 됩니다. 그것은 공업용으로 밖에 다른 용도에는 참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금강석이란 단순이 탄소가 압축된 것입니다. 숯을 무거운 바위로 눌러서 된 것이지요. 쓸모 없는 광석에다가 엄청난 값을 매겨서 그것을 위해 우리는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그것에 가치를 매기라고 말씀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광물이 탐욕과 싸움의 원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은 공업용으로 쓰이는데 그 본 가치는 인위적인 것입니다. 금은 세상에서 인정된 신분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금의 가치의 근거는 탐욕입니다. 금강석처럼 금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지역에 부존 되어 있습니다.

탐욕을 말한다고 하면 석유가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석유 때문에 전쟁이 나고 하나님은 그 싸움에 끌려 들어 갑니다. 우리는 자동차와 기름에 의존하는 사회를 건설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일터나 학교 그리고 시장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지 않고 차를 몰고 갑니다. 휴가도 단순히 그 지방에서 보내는 것이 아니고 흔히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자동차가 당신을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옮겨 주는데 2000 파운드가 넘는 쇠 덩어리에 싸여서 말이지요. 하지만 공중교통은 극히 적은 비용으로 같은 일을 해 냅니다. 큰 자동차나 SUV(스포츠용 벤)은 순전히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기름 때문에 싸우는 전쟁을 인하여 하나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낭비적인 생활방식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하여 기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우리이기 때문이지요. 대채 연료가 있긴 합니다만 석유회사나 다른 이익 집단들의 탐욕 때문에 아직 사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임전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v하나님이 받으시는 원망들 중에 기아(굶주림)가 가장 보편적인 것입니다. 사람들 마다 알고 싶어하는 것은 만일 하나님이 진실로 세상을 사랑하신다면 왜 굶주림이 있게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계의 전인구를 여러 번에 거처서 먹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식량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아를 오게 한 것이 아닙니다. 공업 선진국들이 너무 비대하고 또 매년 그 추세가 증가하고있으며 그 반면 제 삼세계는 굶주리고 있습니다. 매일 귀중한 농토가 공업용지나 주택용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곡식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땅을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경작지의 감소를 상쇠하기 위하여 같은 땅에 해마다 더 많고 더 좋은 작물을 경작해야 하는데 살충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문제는 곤충들이 급속하게 살충제에 면역이 되어 점점 더 그 수가 증가 되고 끝내 작물을 망치게 됩니다.

제삼세계에서는 농부들이 중요농작물, 즉 그 농가가 사용할 식품들을 재배해 왔는데 여분은 그 지방에서 팔았습니다. 오늘 날 세계경제에 있어서 제삼세계 농부들은 현금화 할 수 있는 작물재배를 강요 받고있습니다. 커피, 차나 담배와 같은 작물이 해외에 판매되기 위하여 재배되지만 농부들에 돌아오는 것은 그 이익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생산품들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필수품도 아니고 식품을 생산할 좋은 경작지에서 생산을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세계의 기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지역에서 재배되지 않고 소비되지 않는 식량은 세계에서 가장 살찐 지역으로 수송되었고, 더욱 나뿐 것은 제삼세계의 대대적인 부패가 많은 식량이 그 행선지에 도착하는 것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쥐나 기타 해충들이 세계식량의 10 퍼센트의 손실의 요인이 됨으로 식량 해손 또한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거나 일찍 죽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오래 동안 우리의 몸을 학대하게 되면 마땅히 우리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책임 저야 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금연을 하며, 여러 문제들과 분노를 다스리고 음식을 적절히 섭취하면서 우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은 그의 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몸을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한편으로 우리가 부실한 유전적 특질이나 환경의 희생자들이라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악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의 병과 죽음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하신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 반대로 질병이나 고통은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예로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는 역사상 누구 보다도 더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에게 탓을 돌리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리가 고통과 씨름하고 끝내 그것을 극복할 힘과 인도와 지혜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의 고통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면 즉시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 곳이야 말로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 곳에 가게 되면 그 곳에는 평화와 행복과 분별과 안식이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것이 바로 신앙의 전부입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무엇인가에 엄청난 노력을 쏟지만 결과적으로 얻는 것이 별로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가 받을만한 것을 얻어 냅니다. 만일 우리가 충분이 또 적절히 공부를 하면 대학교나 칼리지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또 만약 우리가 적절히 먹고 운동을 하면 우리 대부분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이고 이기적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고 얄팍하지 않으면 아마 친구들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외롭다면 교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탓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우리가 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탓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가 갖기를 원하시는 것을 위해 우리가 기도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흥정하려고 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한을 드렸던가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에 조용히 하나님을 청종했던가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하나님을 신뢰했었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계획 위에서 일하시고 우리는 그 계획의 전부가 아니고 그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잘 못 되었을 때 그 것은 큰 계획의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 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받게 해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집 없는 사람이 거리에 나 앉아 구걸하고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애기가 물에 빠져 죽는다든지 차 사고로 죽는 경우 같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괴로움이 영원이 존속할 행복으로 변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탓을 돌리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역작용 한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 못되면 하나님을 탓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 되었을 때도 역시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 성공한 경력, 결혼등에 우리가 그 공을 차지하려 합니다만 그 것은 하나님의 공로이지 우리가 받아야 할 공로가 아닙니다. 허물은 양면으로 작용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죽게 되면 심판 날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우리의 모든 행위와 모든 생각과 우리가 말했던 모든 말 하나 하나를 다 해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탓하고 의심했는지 하나님께 설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모든 것을 살피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고 또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하고 슬퍼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게다가 우리가 약하고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용납해 주십니다. 그 분은 완전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의심과 연약함과 싸울 방법이 있는데 바로 강함과 통찰력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와 행함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도록 당신이 허락하신 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최선을 위한 것임을 저는 압니다” 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아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탓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히 일하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애쓰기 바랍니다. 그리고 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우리가 그 일을 얻기 까지 잠시 동안 자원봉사로 일하십시오. 우리가 손해를 봄으로 다른 사람들이 혜택을 입도록 하세요. 만약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탓하지 마십시오. 대신 일년을 더 일해서 우리의 시간과 급료의 일부를 가난한 자에게 주십시오. 만약 우리가 사랑했다고 생각한 여자와의 관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의 아픔을 돌려 놓기 위해서 새 이민자들이나 가난한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데 시간을 할애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쁘게 지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욥기는 성경에 있는 한 책입니다. 욥은 심한 고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했을 때 그는 거부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거든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기 2:10) 이 말을 하는 욥은 그가 받고 있는 고난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믿었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로 받아 드렸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고 받은 것이 여러 곱절로 불어 날 수도 있거니와 또 언제든지 거두어 가게 될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탓하거나 불평할 권한이 그에게 없었습니다. 욥은 그 후에 큰 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애급 땅에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도록 하나님이 택하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400년 동안 노예로 있었는데 그들이 풀려나자 말자 그들에게 일어 났던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결론으로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가 고통 받음으로 그도 고통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통 받는 것도 이유가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해로 계속 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그 고통은 매우 클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영원이 계속될 것이지만 그 고통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만 살아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탓하지 않고 신뢰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탓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나님께 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터무니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성경에 이에 대한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쇠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대답을 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가 대답을 해주시든 아니하시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우리의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욥기 38장 2절에 있는데 “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공동번역)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그의 지혜를 문제 삼는 자가 누구냐고 하나님이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 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내가 바다를 만들 때는? 또 구름을 만들 때는? 내가 새벽을 지을 때는 네가 거기 있었더냐? 네가 바다 밑을 걸어 본 일이 있느냐? 죽음이 무언지 네가 알겠느냐? 네가 별을 음지기겠느냐? 네가 구름을 불러 비를 오게 하겠느냐? 네가 새끼 새를 먹이겠느냐? 말에게 힘을 준 이가 너냐?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이런 일들을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탓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하나님께 불평하지도 탓을 돌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 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구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ARTICLE INTRODUCTION
1. 위대한 영도자들 (The great Leaders)
2. 분노, 그것은 다만 당신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Anger)
3. 죽음은 끝이 아니다 (Death not the end)
4. 진화: 당신의 조상은 원숭이였을지 모르지만 나의 조상은 그렇지
5. 신뢰 (Trust)
6. 구원 (Salvation)
7. 社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 What Do Christian Believe)
8. 기도 (Prayer)
9. 하나님은 항상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God is always with you)
11. 구수네 사람들 (The Guths)
12. 리리의 놀라움 (Lily’s Surprise)
13. 마리아 이야기 (Maria Story)
14. 죄의식 (Guilt)
15. 목 적 (Purpose)

18. 분주한 사람들 (Bus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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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OF THE DAY


“Jesus said: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Matthew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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